스타트링크 라이브 사전 인터뷰: 류원하(Being)님 Part 2

류원하: 그와 별개로 관련지어 조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제가 학부 때 들은 교양 수업 중에 ‘로봇 윤리학’이라는 철학 수업이 있었어요. 그 때 굉장히 인상깊은 질문을 교수님께 하나 받았어요. ‘무인운전을 하는 자동차가 있고 당신이 그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가정을 하자. 주변의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상황이다. 근데 차가 가다가 갑자기 모종의 이유로 급히 왼쪽으로 핸들을 틀어 피하거나, 급히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어 피해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왼쪽에도 자전거를 탄 사람이 있고, 오른쪽에도 자전거를 탄 사람이 있다. 근데 왼쪽에 있는 사람은 헬멧을 썼고,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헬멧을 안 썼다. 그러면 누구를 들이받을 것인가. 그 문제를 기계에게 맡긴다면 어떤 식으로 맡길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셨죠. 사실 유명한 윤리학 문제의 변주죠. 이게 꼭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어도 결정하기 힘든 문제잖아요. 거기서 왼쪽을 들이받아서 헬멧을 쓴 사람을 들이받는다면, 어떻게 보면 헬멧을 썼다는 이유로 패널티를 주는 게 되어 버리고, 오른쪽 사람을 친다면 그 사람은 정말로 죽을 수도 있겠죠. 이런 문제는 기계한테 마냥 다 맡길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보통은 엔지니어로서 풀 수 있는 문제들을 푸는데, 이렇게 엔지니어가 풀지 말아야 하는 문제 또는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되는 문제도 있어요. 이런 걸 우리가 그냥 풀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나서는 것에 대해 한 번 쯤은 고민을 해 봐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요.
S: 그런 류의 가치 판단을 해야하는 상황이 생각보다는 많은 것 같아요.
류원하: 그렇죠. 엔지니어링 문제로 딱 치환 되는 것들은 이런 고민이 필요 없지만, 살다보면 그렇지 않은 부분이 훨씬 더 많거든요. 그간 공부하면서 만났던 많은 가정들은 굉장히 단순화 된 것들이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예를 들면, 경제학에서 모든 사람들이 최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을 하는데, 실제로는 최적으로 행동하는게 불가능한데 말이죠. (웃음) 최적으로 하는거 NP예요. 당연히 안 돼요 그건.
류원하: 단순히 남들에게 인정받는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서는 그냥 욕 덜 먹는 코드를 짜려고 노력하면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진짜 뭔가 내가 세상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측면에서 좋은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면 단순히 엔지니어링 문제만 잘 푸는게 아니라, 좀 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해보고, 다른 것도 많이 접해보고 공부를 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모든 문제를 단순화시켜서, 그냥 엔지니어링 문제로 치환을 해버리는 게 아니라요.
S: 굉장히 철학적인 얘기가 되어버렸네요. 굳이 좋은 프로그래머에만 국한되는 얘기도 아닌 것 같고요.
류원하: 인간으로 사는 게 어려운 것 같습니다. (웃음)
S: 전 다음 생엔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어요.
류원하: 좋네요.
S: 문제풀이 형태로 알고리즘을 공부해보려는 사람들, 대회를 준비해보려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류원하: 일단 기본적으로 문제 해결에 뛰어들기에 앞서서, 자신이 어떤 학습 단계에 있는 지를 먼저 파악해 보는 것을 권하고 싶어요. 가끔 보면 문제풀이보다는 프로그래밍 언어 내지는 프로그래밍 자체에 대한 학습이 좀 더 필요한 수준인 분들도 보이거든요. 사실 내가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척도가 사실 명확히 존재하진 않지만, 그래도 내가 지금 뭘 공부를 해야하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만약 내가 지금 프로그래밍, C언어도 잘 모르는데, 메모리를 동적할당해서 문자열 처리를 하기 위해 trie를 만든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될 것도 안 돼요.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걸 공부하는 게 맞나?’ 하는 고민을 좀 해 보시고, 모르겠다 싶으면 주변 사람들 내지는 알고스팟 등의 채널을 통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라도 조언을 구해 보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그냥 막연히 문제를 붙들고 ‘풀어보겠어! 으쌰으쌰!’ 하는 마음도 물론 좋고, 재밌어서 계속 문제를 푸는 것도 좋아요. 하지만 만약 좀 더 목적을 가지고 공부를 한다면, 내지는 효율적인 공부를 하고싶다면, 내가 지금 단계에서 제일 필요한 게 뭘까 그걸 항상 좀 고민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S: 뭐 아까 말했듯이, 그것도 쉽지 않죠.
류원하: 쉽지 않죠. 그런 삽질을 사실 최소화하는 방법들을 스타트링크가 좀 찾으면… (웃음)
S: 아 예, 저희 고민 하고 있고요!
류원하: 아, 농담이 아니라, 근데 진짜 그래요. 학습엔 단계가 있어요. 물론 저는 예전에 모던 C++은 커녕, 아니, C++도 아니고 완전 C로 직접 자료구조를 구현하거나 문자열 처리를 하거나 메모리 관리를 직접 해가면서 공부를 했고, 그러면서 많이 늘긴 했는데, 그게 효율적인 공부방법이었다고는 도저히 못 하겠어요. 일단 시간은 유한하고, 특히나 대학생 분들 같은 경우에는 한 해 한 해가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하는 나이고.. 그 때 어떤 걸 선택해서 공부를 하느냐가 굉장히 앞으로에 영향을 많이 끼치잖아요. 그러니 그냥 눈 앞에 내가 할 수 있다고 닥치는대로 하는 것 보다는, 내가 이걸 왜 하고,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런 방법론 내지는 방향에 대한 고민을 계속 했으면 좋겠습니다.
S: 사실 이런 얘기를 자꾸 꺼내는 이유가, 제 입장에서는 이게 남 일 같지 않거든요. 제가 처음 컴퓨터를 배울 때 어느 날 사촌오빠의 개인 웹사이트를 봤는데, 화려한 애니메이션을 플래시로 만들어놨더라고요. 그 때 당시 플래시가 막 유행을 하던 때였는데.. 그걸 보고 제가 어, 나도 이런 걸 배워보겠어! 했는데 저게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파워포인트라는 게 애니메이션이 있대요. 그래서 동네 컴퓨터학원에서 파워포인트를 열심히 배웠는데…
류원하: 어 이거 아닌데?
S: 네, 그랬죠.. 그러고 나서 보니까 HTML이란 게 있대요. 그래서 배웠죠. 뭔가 맞는 것 같은데 아니더라고요. 지금에서야 뭐 HTML5와 CSS로 애니메이션이 많이 가능해졌지만 그 땐 뭐 표 프레임 만들고 이게 다였죠. 그러고 나니까 또 움직이는 건 javascript로 하는거래..
류원하: 그랬는데, 잘 안 움직여졌을텐데 그 때는.. 지금같지 않았을텐데요.
S: 그렇죠 지금같지 않았죠. 장미가족의 태그교실에서 꽃 비 내리는 그런… 하하하!
류원하: 하하하! 그건 됐겠네요 뭐 메뉴 위에 올리면 색깔 바뀌고..
S: 네 마우스 커서에 뭔가 따라다니고..
S: 아무튼 그래서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많아요. 컴퓨터공학과에 왔다고 하더라도, 학교에서 자료구조 알고리즘 배우고 나도, 실제로 예를 들어 내가 웹을 하고싶다 이러면 뭐 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고, 남들이 파이썬 좋다해서 배워 봤는데 해 보니 별 거 없네? 이런 사례를 주위에서 많이 보니까..
류원하: 뭐 다들 그렇죠. 저도 그런 고민 많이 하고요. 생각해 보면 항상 최적의 방향이란 게 있을 수 없죠. 아까도 말했지만 있다고 해도 NP일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을 패시브하게 가지고있는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가 이제 뭐, 우연한 기회에 어떤 해답을 찾거나 방향을 찾거나 하는 거 아니겠어요.
저의 AI 교수님이 마지막 시간에 말씀하셨습니다. A* 알고리즘처럼 그 때 그 때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가다 보면 A*의 completeness가 증명이 되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뜻하는 바를, 최적해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다들 감동 받는 분위기여서 차마 ‘교수님, 그 전에 죽으면요? 세상만사의 솔루션 스페이스는 finite가 아닌데..’라고 말할 수 없었죠.
류원하: 옛 격언에 고기를 주지 말고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요즘 어떤 얘기를 하냐면 유투브를 접속하는 법을 알려주라고.. (웃음) 예전에는 사실 공부할 수 있는 리소스가 적어서 그랬던 영향도 분명 있어요. 근데 요즘은 너무 과해서 문제인 시대고 현명하게 무얼 공부할 것인가 하는 것들이 문제죠. 결국 대전제는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면 안돼요.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으면 버티는 게 힘들죠. 사실 공부한다는 게 내가 성장해서 즐거워지는 것도 있지만, 계속 벽에 부딪히는 과정이잖아요. 내가 이걸 봤는데 이해가 안 되고, 답답하고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고, 연습 문제라고 놔 둔건 하나도 못 풀겠고.. 그런 과정들 모두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데, 좋아하는 걸 하지 않으면 이걸 견뎌 내기 어렵죠. 거기 더해서 좋아하는 걸 함에 있어 방법이나 과정이나 이런 걸 고민을 하면 더 좋겠고요.
S: 이력을 보면 PS 이외에도 광범위한 지식을 가지신 것 같은데, 이런 공부를 접하게 된 계기나 스스로 하게 된 동기가 있나요?
류원하: 광범위하게 생계형 대회를 나간 적은 있어도.. (웃음) 그렇게 공부를 한 적은 없어요! 다 상금이나 상품이 걸린 대회니까, 그리고 나가서 뭔가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나간 거죠. 좀 슬픈 얘기긴 한데, 알고리즘 문제 푸는 대회에서 손 떼게 된 계기가 월파에 갔다 와서인데 ‘아, 이거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팀원 셋이 죽어라 열심히 해도, 내 능력으론 메달은 간당간당 하겠구나, 지금은 어림도 없고.. 안 해야지! 난 할 만큼 했다, 그만 하자.’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 가성비 안 나오는 거 안 합니다. (웃음)
S: 아 예.. 동기는 결국..
류원하: 동기는 돈이고요!
S: 중요한 동기죠.
류원하: 왜냐면 저도 먹고 살아야 하거든요! 어쨌든 지금까지 제가 알고 있는 걸 기본으로 특정 도메인에 한정해서 지식이 필요하다면 필요한 만큼만 배워서 대회를 참가했습니다. 기본은 근성! 그리고 그 근성은 문제 풀면서 많이 키웠죠.
S: 네 뭐, 얘기 나온 김에..
류원하: 혹시 하얼빈?
S: 네, 하얼빈 (ACM-ICPC 월드 파이널).
류원하: 이 자리를 빌어 얘기하는 거지만.. 팀원들에게 굉장히 미안하고요. 그 이후로 팀원들하고 얘기를 잘 못 해서.. 제가 LOL을 안 하지만 LOL에 비유를 하자면, 더 심한 표현도 있지만, 제가 던졌어요. 제가 한 세 시간 반, 네 시간 반동안 키보드 잡고서 안 주고, 한 문제도 못 풀었어요.
S: 아니 무슨 문제를 그렇게 잡으셨나요?
류원하: A번이요! 하하하! 그래서 한 일 년에 한 두 번 정도는 IRC 등지에서 저와 지인들이 A번 드립을 치며 노는 걸 볼 수 있어요. ICPC 나가서 A번도 못 풀었어요! 하면서..
류원하: 어 그 때, 말린 거는요, 문제를 열 갠가 열 두 갠가 봤는데 제가 풀 수 있는 게 없어 보였어요. 근데 하나 무식한 구현문제가 있는데.. (웃음) 그 때 상황을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무식한 구현 문제를 풀어서 서울 사이트 1위를 하고 월파에 나갔거든요. 그래서 구현에 약간 자신이 있으니까, 일단 다른 팀원들에게 다른 문제를 생각하고 있을 동안 제가 그 문제를 풀고 있겠다고 했죠. 그리고 그 문제를 풀어야 우리 팀이 약간 승산이 있을 것 같기도 했고.. 그런데 ‘그 일단 풀고 있을게’가 계속이 됐어요. 계속 짜고 계속 내고 계속 틀렸죠.
S: 그럼 다른 분들은?
류원하: 거기서 인터럽트를 안 하더라고요. 제가 너무 집중한 상태에서 코딩을 하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은데..
S: 그럼 큐에 뭔가 코딩할 거리가 있긴 있었던 건가요?
류원하: 네, 그랬죠. 제가 던졌어요. 범인은 접니다.
류원하: 월파 끝나고 난 직후에 너무 멘붕이 와서 완전 이보다 더 절망적일 수 없는, 이보다 더 불쌍해 보일 수 없는 자세로 이러고 있는데, 지도교수님이 오시더라고요. 보통 그 상황에서 그 교수님은 화를 내시거든요. 근데 그 때 교수님을 보니까, 얼굴은 화를 내고 계세요, 표정은. 표정은 엄청 화를 내고 계신데, 제가 너무 그러고 있으니까, 말로는 수고했다 하시는데.. (웃음)
류원하: 보통 대회를 4월, 5월 이렇게 따듯할 때 하거든요. 근데 하얼빈은 가장 추운 2월에, 눈 축제할 때 했어요. 대회 등록을 하는데, 놀랐던 게 두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대회를 등록하니까 HM을 줬고요. 주. HM = Honorable Mention. 보통 예선을 통과하여 해당 대회에 참가한 팀에게 주는 참가상. 사실 예선을 통과해야만 받을 수 있는 영예로운 상이지만… 개개인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 참가상격인 HM을 부끄러워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S: 아니 등록을 하고 바로 줬다고요?
류원하: 네 등록을 하니 일단 HM 상장을 주고 시작하더군요.
류원하: 두 번째로 충격받은 게, 방한 장비를 주더라고요. 풀세트로, 귀마개까지. 인민군 귀마개 있잖아요. 근데 또, 혈기왕성한 유럽 애들은 반팔 입고 다니기도 하더라고요.
류원하: 제가 나쁜 일은 잘 기억을 못 해요. 기억이 많이 나진 않아요. (웃음) 근데, 하나만 더 얘기 할게요. 이것도 자주 하는 얘긴데, 보통 월파같은 데 가면 참가자들을 위한 액티비티를 많이 하는데요, 거기서 이제 snow sculpture, 눈 조각을 했어요. 대회 전에. 아니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 보세요, 눈 조각을 하라고, 추운 데 밖에 나가서.. 대회를 해야 되는데, 공구를 들고, 그 추운데 덜덜 떨면서… 대회 전에 그걸 누가 하고 있어요?
S: 아, 모 팀의 누구는 재밌게 했다는데..
류원하: 제 기억으로는 팀 별로 눈에 글자를 하나씩 새기는 이벤트였는데, 반 이상이 참가 안 했을 거예요. 저희도 안 갔죠. 그런데 지도교수님이 오셔서 물어보셨어요. 눈 조각 어땠냐고… (웃음) 거기서 만약에, 교수님이 무슨 글자를 새겼니 하고 물어보셨으면… 아니면 좀 더 디테일하게 물어보셨으면, 뭐, 음각을 했니, 양각을 했니 이런 걸 물으셨으면… (웃음) 아 아주 피곤해져요.
S: 그래도 하얼빈 주최측을 위해 변명을 하자면 모 팀의 모 선배님께서는 아주 해맑고 즐겁게 즐기셨다고 합니다.
류원하: 신기하네요. 뭐 저는 안 해봐서 즐거운 지 아닌지 모르겠고요! 이젠 얘기할 수 있지만 안 갔습니다. 눈 조각, 안 했습니다.
S: 그래도 뭐 조각 축젠데 음각을 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류원하: 그렇겠죠. 그래도 뭐 좀 삘(?) 받으면 음각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어차피 깎으라고 큐브를 줬을 거 아니예요. 이걸 안으로 깎는 게 빠르겠어요, 밖으로 깎는 게 빠르겠어요.
어쨌든 참가를 안 하셔서 모르신다고 합니다. 음각인지 양각인지 서울대 팀과 서강대 팀의 제보 바랍니다. (?)
S: 네, 뭐 베트남 얘기도 할까요?
류원하: 베트남이요? 허허. 아우 베트남 아주 피곤하죠.
류원하: 베트남… 그 때도 제 기억이 맞다면 A번이 문제였는데요. 하하하! A번이 아주 쉬운 문제였어요. 근데 예비 소집 때 저희가 이것 저것 테스트를 해 봤거든요. 줄 끝에 공백이 있으면 맞게 해 주나, 채점 기준은 어떻게 되나, 런타임 에러는 어떨 때 뜨나, MLE를 주나, TLE를 주나 RTE를 주나 이것저것 테스트를 해 봤어요. 당시 예비소집 땐 채점이 엄청나게 느렸고, 대회 때는 넣자마자 바로 리스폰스가 오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 자동채점으로 바뀌었구나 하고 생각을 할 수 있는데.. 그 땐 그걸 몰랐죠.
류원하: A번 엄청 쉽네, 하고 냈어요. Wrong answer가 바로 나오는 거예요. Run ID 2인가 3인가 그랬는데.. 근데 나만 틀린 게 아니야. 몇 팀 더 있어. 근데 맞는 팀도 있는 거예요. 뭐지? 하고 계속 고쳐서 내다가 295분에 맞았죠. 줄 끝에 공백이 하나 있어서 틀리게 처리를 한 거였더라고요. 근데 웃긴 건 막 내면서 그걸 없애서도 내 봤던 것 같았거든요. 근데 이게 당시 멘붕한 상태니까 없애 봤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막 냈겠죠. 어쨌거나 저는 295분에 AC를 받고 매우, 순화해서 얘기하면, 매우 화가 났죠. 제가 좀 감정 컨트롤을 잘 못해요. 굉장히 화가 나서 막 소리를 지르고, 책상을 두들기고 했는데, 대회 스태프들이 카메라를 들고 뛰어오더라고요! (웃음) 얘네가 대회 끝나기 직전에 AC를 맞아서 기쁜 모양이구나! 하고요…
S: 그렇죠.. 격렬한 기쁨과 격렬한 분노가 구분이 안 될 수 있죠…
류원하: 그 때 정말 가감없이 표현을 했거든요.. 그리고 대회가 끝났어요. 그랬는데 대회가 끝났으니까 관광을 시켜 준대요. 근데, 그 때 좀 날씨가 안 좋았어요. 생각보다 많이 안 좋았어요. 폭우가 왔거든요. 대회 끝나고 참가자들을 버스에 실어서 관광 코스로 우릴 베트남 전통 시장에 데려갔는데, 비가 와서 물이 좀 고인 데가 있으니까.. 보트를 타고 다니더라고요…
S: 고인 정도가 아닌데요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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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폭우는 이런 느낌이라고 합니다. (출처: news.joins.com)
류원하: 중학교 사회 책이나 초등학교 사회 책 보면 나오는 거 있잖아요. 근데 거기다가, 우비 입혀놓고 내려 준 다음에, 알아서 구경해~ 하면서 간 거예요.. 난 지금 기분이 말이 아닌데… 난 막 욕을 한 바가지로 하고 싶은 심정인데, 비는 쏟아지고…
류원하: 그러고 나서, 출국이 그 다음 날인가 그 날이었는데 비가 계속 오는거예요. 기록적인 폭우가 왔어요. 도심이 잠겼어… 택시가 안 다니는 거예요. 공항에 가야하는데 택시가 없대. 막 번개치고 비 오는데.. 도시 한 가운데 큰 강이 있는데 다리도 건널 수가 없고.. 근데 때마침 디렉터분이 지나가더라고요. 그 분께 얘기를 했더니, 어떻게 드라이버를 섭외해 줬어요. 그래서 그 차를 타고 공항까지 가는데, 차가 그 상태에서 운전이 가능한 지 처음 알았어요. 휠이 반이 잠겼는데, 문을 열면 물이 막 들어오는데 차는 앞으로 가더라고요.
S: 그 상태에서 운전하면 위험하지 않나?
류원하: 몰라요! 그 때 저는 이미 멘붕을 할 대로 한 상황이었고, 그냥 집에 가고 싶었어요! 되게 가고 싶었어요. 아무튼 차 문을 열면 차 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올 만큼 차가 잠긴 상태에서 신기하게 물이 안 차고 잘 가더라고요. 그렇게 물을 가르면서 공항까지 갔어요. 근데, 당연히, 그 날씨에 비행기가…. 뜨면 안 되는데…. 근데 뜨더라고요. 탔어요 비행기를. 근데 막 번개는 계속 치고 있고, 비는 미친듯이 오고….
류원하: 베트남 좋은 나라예요.. 거기 친구들 착했어요. 좋았는데, 저랑은 안 맞네요!
S: 아 뭐, 저희 학교에도 다낭이랑 안 맞는 친구들이 있어요.
류원하: 아 그 때 자원봉사 학생에게 조금 미안하네요. 제가 그 때 기분이 내내 굉장히 안 좋았고, 끝날 때 까지 방에만 있어서.. 연락할 방법은 없지만 미안한 마음은 있습니다.
S: PS와 관련해 개인적인 목표나 계획하고 계신 것이 있나요?
류원하: 알고스팟 활성화요. 사람은 꾸준히 유입이 되고 있고, 한국에 이런 커뮤니티가 얼마 없으니까 잘 관리를 하고 싶죠. 뭐 저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생각은 하고 계신데, 어떻게 생계랑 잘 조율을 할지가 문제예요. 저는 새로운 운영진을 영입하는 게 단기적으로도 장기적으로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언제까지나 아재들이 계속 운영을 할 순 없잖아요. (웃음)
운영진이라고 해서 특별히 의무를 부여하거나 이런 건 없거든요. 그냥 각자 힘 닿는 대로 하는 거죠. 예전에는 제가 대회 디렉팅을 할 때, 아까 말씀 하신 완벽주의적인 경향.. 이런 것들로 스트레스를 드렸던 부분도 많이 있는데, 이젠 대회를 열더라도 개개인의 부담을 좀 줄이는 쪽으로 하고 싶네요. 어떻게 생각하면 운영진들이 일 년에 한 문제 정도 내는 건 어렵지 않은 것 같은데, 막상 하려고 보면 누가 어떤 난이도의 문제를 내느냐부터 해서 고민할 거리가 많아요. 사람의 일이 제일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건 사람의 일의 영역인 것 같고요.
S: 말씀하신대로 누군가 하나 나서지 않으면 힘든 것 같아요.
류원하: 네, 근데 그게 옳은 방향인가는 잘 모르겠어요.
S: 나서는 사람이 있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든 해야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BOJ는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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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셀프칭찬은 역효과야!
S: 실리콘밸리에 어떻게 가게 되셨고, 어떤 일을 하셨나요?
류원하: 원래는 트레이딩 쪽을 가고 싶었는데, 미국에서 인턴을 하기 위해서 사전에 뭘 준비해서 언제 지원을 해야하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급하게 진행을 했고, 트레이딩 시장이 별로 안 좋기도 해서 그 쪽으로 못 가게 되었어요. 그렇다고 당시 다른 IT 기업을 가기에도 시기가 너무 늦어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결국 아는 사람이 있어서 갔었어요. 처음 얘기할 땐 그게 아니었는데, 제가 가기로 예정된 프로젝트와 조직이 좀 바뀌면서 아는 사람이랑 같이 일을 하게 되었어요.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인이랑 일을 하다 왔고요. 하하하! 그렇지 않았으면 저도 살아 남기 좀 힘들었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류원하: 샌프란시스코에서 3개월, 팔로 알토에서 3개월정도 살았고요, 회사는 팔란티어 6개월, 쭉 같은 회사에서 일을 했고요. 보통 인턴들한테는 인턴을 위한 독립적인 프로젝트를 주는데, 보통 3개월만 하는 인턴들이랑 달리 저는 6개월 정도 길게 잡고 갔기 때문에 다른 개발자들과 비슷한 마일스톤에 맞춰서 작업을 했습니다. 팔란티어라는 회사 자체가 워낙 아는 사람은 ‘오! 좋은 회사!’ 하지만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그런 회사거든요. 저도 가기 전까지는 몰랐고요. 제가 있던 프로젝트는 굉장히 뒷단에서 대규모 데이터를 Apache Spark를 써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내지는 잘 관리된 방법으로 변환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거였어요. 당시 팔란티어에 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위 말하는 빅데이터나 하둡 이런 걸 전혀 모르는 상태였는데 가서 맨 땅에 헤딩을 많이 했었죠. 그 전까지 한국에서 병특이나 여러가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약간 자부심이나 자존감같은 게 있었는데, 가 보니 그런 것들이 별 의미가 없더라고요. 사실 지금까지 하던 것과 다른 분야에서 전혀 다른 일을, 제 백그라운드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하는 상황에서, 당연히 제가 인정 받으려면 적응하려고 많이 노력해야 하는 건데, 그런 부분에 있어 조금 소홀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실리콘밸리에서의 삶이 생각했던 것 만큼 낭만적이거나 즐겁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아닙니다. 하지만 선택지가 많다는 측면에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은 아닐지언정, 기회의 땅일 수는 있죠. 그런데 감수해야 할 부분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S: 예를 들면?
류원하: 세금과 집값이 가장 큰 문젠데요..
S: 요즘 정말 난리더라고요. 팔로 알토 집 값..
류원하: 진지하게, 정말 심각한 문제예요. 혼자 가서 혼자 벌어서 살면 한국에서 그렇게 할 때의 평균적인 삶하고 비슷하거나, 그 이하의 삶을 각오하고 가셔야 될 것 같아요. 실제로 요즘 대졸 신입들은 대학에서 기숙사 생활 하듯이 룸메이트 구해서 사는 경우들이 훨씬 많고요.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까.
류원하: 아 또 먹는 거는.. 그냥 영양분이거니 하고 살면 됩니다. (웃음) 아 이것은 그냥 내게 영양분을 보충하는 물질이구나 하고 생각하면 돼요. 거기 음식이 적당한 수준을, 중도라는 걸 몰라요. 극단적으로 기름지거나, 극단적으로 짜거나, 극단적으로 달아요. 제가 팔로 알토 살 때, 회사에서 집까지 15분 정도 걸어서 출퇴근하는데, 중간에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파는 가게가 하나 있었어요. 좀 유명한 곳인지 항상 사람들이 줄 서서 사 먹더라고요. 그래서 하루는 이걸 꼭 먹어 봐야겠다 하고 줄을 서 봤어요. 우리는 보통 아이스크림 샌드위치하면 빵X아 같은 걸 생각하잖아요. 근데, 초콜릿 잔뜩 박힌 쿠키가 있고요, 그 사이에 아이스크림을 끼워서 주더라고요. 진짜 저 마카롱같은 단 거 되게 좋아하는데, 근데 그건 진짜 못 먹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아이스크림만도 팔길래 한 스쿱 사서 먹어봤어요. 어우 달아! 근데 너넨 이걸 초콜릿 쿠키 사이에 끼워 먹는다고? 제정신이니?! 엄청난 충격이었죠. 음식 맛이 진짜 적당한 걸 몰라요…
류원하: 어떤 분이 트위터에서 말씀하셨는데, 미국에서 음식 시키면 감자튀김이 사이드로 많이 나오잖아요. 그거는 말하자면 회를 먹으러 가면 나오는 바닥에 깔린 무 채 같은 걸로 생각하면 된다고.. 그걸 다 먹으면 안된다고.. 그런 얘기를 들은 것도 같네요.
류원하: 세계 어딜 가도 끔찍한 건 끔찍한 것 같아요. 헬조선을 탈출한다고 별로 달라질 건 없어요! 어차피 거기 가면 외노자고요, 지나가다가 노숙자들 마주치면 쫄고요.. 그냥 외노잡니다.
S: 중동에 희망이 있다고 합니다!
류원하: 어딜 가도 괴롭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기술팀 TO 많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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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님 이 인터뷰 편집은 고양이가…
S: 넥슨 등에 취직하고 싶은 컴퓨터공학과 학생에게 개인적으로 어떤 공부를 추천하고 싶은가요?
류원하: 신입 분들께는 최소한의 컴퓨터공학적 지식과, 무엇보다 포텐셜을 요구를 해요. 필요한 지식이란 건 기준이 주관적이기도 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많이 변하기도 하거든요. 예를 들면 요즘 모바일 게임 같은 경우, 예전처럼 시스템의 로우레벨에 대한 지식이 많이 필요하진 않아요. 물론 필요로 하는 부분들도 여전히 있죠. 하지만 모바일 게임을 만들면서도 그런 부분이 있고, 아닌 부분이 있는데, 이렇다 보니, 사실 지식에 대한 평가보다는 성장 가능성에 대한 평가들을 좀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죠. 내가 아는 걸 확실히 알고, 모르는 걸 확실히 모른다는 그 경계가 좀 명확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만약 특정 분야를 더 깊게 공부했다면 그렇게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있을 거잖아요. 이게 재밌어서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라든가, 아니면 내가 이런 걸 하려고 공부했다 이런 거요. 그런 리즈닝이 있어야 그냥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 공부했다는 것 보다 확실히 성장 가능성이 있어 보여요.
류원하: 지식 자체는 기본적인 data structure와 알고리즘을 당연히 기대는 하지만 그렇게 많이, 이를테면 maximum flow 알고리즘을 아냐, 이런 식으로 무섭게 요구하진 않고요, 구현 능력과 언어에 대한 지식은 어느 정도 요구를 합니다. C# 내지는 C++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하고, C++이라면 가급적 모던 C++을 기본으로 하는 게 좋겠죠. 모던 C++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단순해요. 모던 C++을 모른다면 알아야 하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예요. 만약 모던 C++을 하지 않았을 때 필요한 것들을 모두 안다면, 예를 들어, 메모리 관리 직접 다 할 수 있고, 어떤 문제점이 생길 수 있고 이런 거 다 안다면, 당연히 물론 좋겠지만요. 뭐 적어도 하나의 능통한 언어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을 것 같네요. C#이나 C++이 아닌 다른 언어를 한다고 해도 진짜 포텐셜이 있다면 괜찮은 거죠. 다른 쪽의 지식은 뭐 흔히들 네트워크나 시스템 아키텍쳐, OS 이런 것들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그런 것들의 중요성은 조금씩 옅어질 때도 있고, 포지션에 따라서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류원하: 어쨌든 중요한 건 신입들에게 기대하는 건 포텐셜이고, 이걸 증명할 방법은, 내가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거예요. 면접관 입장에서, 공부를 할 때 어떤 계기로 시작해서, 어떤 자료를 통해서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한다는 걸 잘 어필을 하면, 아, 이 사람이 뭔가 모르는 걸 새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이런 식으로 잘 공부를 할 수 있겠구나 싶겠죠. 이런 걸 잘 증명할 수 있으면 꼭 넥슨GT가 아니더라도 충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긴 시간동안 좋은 이야기 들려주신 류원하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 다음 글은 xhae님의 인터뷰를 마저 듣도록 하지요!

스타트링크 라이브 사전 인터뷰: 류원하(Being)님 Part 2”에 대한 답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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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선0

자칭 미녀 개발자. (어째선지) 타칭 알고리즘 마녀. 코드는 산뜻하게, 글은 쫀득하게 휘갈기는 스타트링크의 감초 귀염둥이 CTO입니다.